전세와 월세의 동반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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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와 월세가 동시에 뛰어오르는 현상은 최근 몇 년 새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더욱 뚜렷해진 흐름이다. 특히 2025년에 들어서면서 각종 통계와 현장 인터뷰를 종합하면, 세입자들이 느끼는 월 임대료 부담이 과거보다 크게 가중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KB부동산( http://market.kbstar.com )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약 6억4천만 원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8%가량 상승했다. 이는 코로나 이후 유동성 장세에서 급등했던 2021년의 전세 시세에 근접하는 수치로, 매매시장이 주춤한 와중에도 전셋값은 되레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실제 현장 반응도 심상치 않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조모씨(36)는 “전세 만기가 아직 반년 정도 남았는데 벌써부터 집 근처 공인중개업소를 들락날락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변 시세 대비 조금이라도 낮게 나온 전셋집을 확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전셋값이 전반적으로 올라 있는 데다, 전세 매물 자체가 풍부하지 않다 보니 실질적인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조 씨는 “임대료를 충당하기 위해선 반찬 비용이라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월세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KB부동산이 발표한 월세 지수(2025년 1월 기준)도 전년 동기 대비 7~8%가량 올라 120선 초반을 기록했다.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세입자들이 월세로 전환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수요가 몰리고, 그에 따른 월세 시세도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월세 상승률이 전셋값 상승폭을 웃도는 것은 과거의 ‘전세>월세’ 선호도 공식이 점차 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전세든 월세든 어느 한쪽이 유리하거나 저렴하다고 보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전세 보증금을 대출로 충당할 경우 발생하는 월 이자 부담과, 월세에서 매달 내야 하는 금액이 거의 비슷해지는 상황이 늘고 있다. 신용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전세 대출 이자나 월세로 내는 금액이나 결과적으로 비슷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세입자 입장에서 ‘어떤 형태로 임대료를 내든’ 주거 비용 부담이 피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구조적 부담은 주택 시장의 수요·공급 비율 및 금리 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리 인상기가 이어져 대출 이자율이 낮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전세를 유지하려면 추가 자금을 융자받아야 하고 그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월세 전환 시 매월 고정된 월세를 내야 하므로, 가구 소득 대비 월 임대료 비중이 빠르게 상승한다. 결과적으로 전세·월세 중 어느 쪽을 택해도 세입자가 느끼는 압박감은 크게 다르지 않아,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의 직장인과 신혼부부, 1인 가구 등에 대한 주거비 부담이 날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헬리오시티 사례로 본 임대차 시장 동향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헬리오시티’는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 중 하나로, 매매뿐 아니라 전·월세 거래량도 많아 임대차 시장의 지표 역할을 해왔다. KB부동산 및 아파트실거래가( https://rt.molit.go.kr ) 자료에 따르면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의 2023년 평균 전셋값은 약 8억 1천만 원이었다. 그러나 2024년 4분기 이후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더니, 2025년에 들어서는 10억 원 안팎으로 상승한 거래가 포착되었다. 호가 기준으로는 11억1~2억 원까지 언급되어, 최대 3~4억 원가량 상승한 셈이다.
월세도 뒤처지지 않는 상승세를 보인다. 헬리오시티 전용 84㎡의 경우, 2023년 초에는 보증금 3억 원에 월세 210만 원 선에서 계약이 이뤄졌다. 하지만 2024년을 거치며 보증금 4억 원에 월세 300만 원, 혹은 보증금 5억 원에 월세 200만 원 등 세입자의 선호도나 자금 상황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증금을 높이면 월세를 그만큼 낮출 수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둘 다 오른 수준이라 세입자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증금을 올리거나 월 임대료를 증액하는 추세가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로는,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매매전환 수요가 주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집주인도 굳이 가격을 낮춰 내놓기보다는 임대료를 꾸준히 인상해 수익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도 크게 조건이 좋아지지 않다 보니, 기존 보증금을 그대로 올려주는 형태로 재계약을 택하는 사례가 흔하다.
아래 표는 헬리오시티(전용 84㎡) 임대차 시세 변동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전·월세 모두 2023년 대비 꾸준히 상승하며, 연 단위로 볼 때 임차인의 부담이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구분 | 2023년 평균(억 원) | 2024년 말 평균(억 원) | 2025년 호가(억 원) |
---|---|---|---|
전세(보증금) | 8.1 | 10.0 | 11~12(호가) |
월세(보증금+월 임대료) | 보증금 3 + 월 210 | 보증금 3.5 + 월 250 | 보증금 4 + 월 300 |
(자료 출처: 아파트실거래가, 현장 공인중개업소 인터뷰, 2025년 1월 기준)
전세 대출 이자와 월세의 실질 부담이 엇비슷해지면서, 헬리오시티뿐 아니라 주변 단지나 강남 3구 지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1억 원 보증금을 늘리면 월 이자가 약 40만4~5만 원 선, 즉 월세로 환산하면 비슷한 비용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흔히 나오는데, 이는 전세 대출 이자율이 약 4~5% 선에서 유지되는 상황과 맞물려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세 메뚜기족, 공급 부족 현실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한때는 서울 외곽이나 경기권 입주장을 쫓아다니는 이른바 ‘전세 메뚜기족’도 나타났다. 입주 직후 공실이 많은 단지를 찾아 전셋값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계약하고, 다음 입주장으로 갈아타는 식이다. 그러나 2025년에 접어들어 서울시의 신규 입주 물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이 전략을 쓰기조차 쉽지 않아졌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 ‘아파트실거래가’ 분석 결과(2025년 2월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서울지역 입주 예정 물량은 약 4만 3,600가구 수준으로 서울의 연간 적정 수요치인 4만 6,000가구를 밑돈다. 게다가 2026년에는 2,800가구대로 급감하고, 2027년과 2028년에도 1만 가구 안팎에 머무는 등 향후 수년간 ‘극심한 공급절벽’이 예고되어 있다.
이처럼 공급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데, 전세를 원하는 실수요자와 월세 전환 수요까지 동시에 존재하니 전세 시세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전세 대란’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던 시각이 있었으나, 지금은 ‘공급 절벽’이라는 구조적 원인까지 더해져 전셋값 상승세를 오래 붙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공급량이 감소하면 매물이 시장에 많이 나오지 않게 되고, 그만큼 집주인은 가격을 내릴 동기가 약해진다. 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지역, 학군, 직주근접성을 모두 고려해 볼 때 선택의 폭이 좁아지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전셋값 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입주 물량이 충분하면 입주 초기에 전셋값이 다소 낮게 형성될 여지가 있지만, 서울은 몇 안 되는 대규모 단지를 제외하면 이런 현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세 메뚜기족 현상의 퇴색은 결국 임차인들이 ‘버티는 재계약’을 택하는 사례를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전월세 시장의 이동이 둔화되고, 전셋값은 ‘단계적 우상향’ 기조를 유지할 공산이 크다. 시장의 매물 다양성이 떨어지면서 임대료 상승에 대한 견제 기능도 작동하지 않게 되어, 매도·매수 시장뿐 아니라 전세·월세 시장에서도 가격 왜곡이 우려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전셋값 상승이 향후 매매시장에 미치는 영향
전세가격은 종종 매매가격을 ‘견인’하는 지표로 거론된다. 전세가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조금 더 돈을 보태 집을 매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매매 수요가 크게 늘지는 않고 있지만, 향후 금리가 인하되거나 부동산 경기가 개선 국면에 접어들면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온다.
현재(2025년)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전반적인 거래 침체 속에 일부 지역에서만 국지적 거래가 발생하고 있다. 매수자들은 금리 추이와 경기 전망을 고려해 신중하게 움직이고, 집주인들은 낮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기보다는 임대를 유지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거래 절벽’ 상태에서 전셋값이 오르더라도 매매가격에는 즉각적인 영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경제 전반이 살아나거나 규제가 풀려 매매심리가 되살아난다면, 고공행진을 이어온 전셋값이 향후 집값 상승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최근의 전셋값 상승을 단기적 현상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셋값이 오르면 월세가격도 연동해 오르고, 결국 임대차 비용 전반의 ‘상한선’이 높아진다. 이는 젊은 층이나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켜, 내수 경기와 소비 심리에 부정적인 압박을 줄 수 있다. 특히 만기가 도래하는 세입자들은 연장 계약 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거나, 보증금 증액이 부담되면 월세로의 전환을 택해야 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가처분 소득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격을 단기에 자극하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 침체기가 끝나 경기 회복세가 보이는 순간,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아진 만큼 매매전환 수요가 급격하게 일어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월세 시장의 흐름과 매매시장의 동향은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밀접하게 맞물려 있으므로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